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도록 재거나 자르는 일. 벌써 5년 전 이야기가 되었네요. 레어로우의 스틸 얼라이브에서 진행되었던 디자인 랩 투어에 대한 기억입니다.
난생처음 보는, 굉음을 내는 기계들을 하나씩 체험하는 것은 정말 색다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단단한 철판도 반으로 접어버리고, 튼튼한 파이프도 이리저리 구부러뜨리는 그 힘과 그 와중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함까지. 여전히 아쉬운 기억으로 남는 것은 용접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할 때마다 구멍이 뚫리더라구요.
그 기계들 중에는 레이저를 이용해 철판을 자르는 기계도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도안을 넣고 철판을 고정한 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아주 빠른 속도로 포인터가 움직이며 철판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살짝 매캐한 탄 냄새와 함께 정밀하게 잘려 구멍이 뚫린 철판은 아직도 제 방에 기념품으로 남아있죠. 오랜만에 먼지를 털고 꺼내보니 시간이 흐른 만큼 녹이 조금 슬었더랍니다. |
|
|
일곱 번째 에피소드는 철의 가공 - 재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재단이라는 단어는 수많은 분야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로, 재료를 알맞게 자르는 행위를 뜻합니다. 하지만, 철은 옷감이나 가죽을 가위로 자르는 것처럼 쉽게 잘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철은 어떤 방법으로 자를 수 있을까요?
첫 시작이면서 마지막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인 재단에 대해 소개합니다.
철에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 「ABOUT STEEL」 |
|
|
재단(Cutting out)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도록 재거나 자르는 일로, 금속 자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재단의 수단과 대상에 따라 수많은 방법으로 분류된다. |
|
|
높은 강도와 경도를 자랑하는 소재인 철은 다른 종류의 자재들과는 다른 재단 방법이 필요합니다. 철에 닿는 물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5가지 방법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익숙하고 기본적인, 톱날로 재단하는 방법입니다. 톱의 형태는 원형이나 긴 직사각형이며, 당연히 철보다 강한 소재를 활용한 톱날을 사용합니다. 의외로 가장 폐기물이 적어 친환경적인 방법이죠.
두 번째는 산소를 연소하여 만든 화염으로 철을 재단하는 방법입니다. 정확히는, 재단이 필요한 곳을 고온의 열로 녹이는 것이죠. 재단 전에 사전 가열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최대 120cm 두께의 철판도 한 번에 재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법에 비해 효율적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죠.
다음은 전기와 고온의 열, 압축된 가스를 동시에 활용하는 PLASMA(플라즈마) 재단입니다. 철의 전도성을 이용한 방법으로, 철판에 전기를 흐르게 한 상태에서 전기로에서 만든 고온의 열로 목표한 부분을 녹입니다. 그와 동시에 가스는 녹은 부분과 잔해들을 깔끔하게 날려버리는 것이죠.
조금 복잡하기는 해도 가장 빠르게 재단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두께가 5cm를 넘으면 사용할 수 없고 재단 면이 깔끔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
|
*오랜 역사가 증명하는 검증된 방법, 톱질입니다. |
|
|
네 번째는 물을 활용하는, WATERJET 재단입니다. 극도로 압축된 물을 쏴서 철을 잘라내는 것으로, 열에 의한 왜곡 없이 빠른 속도로 재단할 수 있고 심지어 20cm 정도의 두꺼운 철판도 잘라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비싸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죠.
마지막은 레어로우도 활용하고 있는 LASER(레이저) 재단입니다. 3cm 미만의 얇은 철판에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아주 정확하고 로스율(재단으로 인해 버려지는 양의 비율)이 낮은 효과적인 재단 방법입니다. 하지만, 주변 온도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고온의 열을 활용하다 보니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
|
|
*대표적인 재단 방법 중 하나인 레이저(LASER) 재단. |
|
|
철제 가구의 특성 상 두꺼운 철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레어로우는 LASER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에 비해 깔끔하게 뒷처리를 할 수 있고, 공장 내부의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LASER 방식은 포인터가 이동하면서 모든 선을 딴 후에야 공정이 끝나기 때문에 동일한 모양이나 패턴으로 많은 수량을 재단할 때 상당히 비효율적이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프레스(PRESS) 방식입니다.
프레스는 말 그대로 자재를 눌러서 찍어내는 공법으로, 특정 모양의 금형을 필요로 합니다. |
|
|
*정해진 모양을 빠르고 정확하게 찍어낼 수 있는 NCT. |
|
|
금형(Die&Mold) 동일한 형태의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틀 중 금속으로 만들어지는 형틀을 뜻한다. |
|
|
레어로우는 그 중에서도 NCT 기계를 활용하여 프레스 공정을 진행합니다. NCT(Numerically Controlled Turret)는 수치 제어장치를 가진 기계로, 다양한 규격의 금형을 정확한 계산에 의해 빠르게 전환하며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얇은 직사각형부터 다양한 크기의 타공, 여러가지 도형 등 금형만 있다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죠.
다만, 금형이 없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작은 금형을 여러번 찍어서 모양을 만들 수는 있지만 비효율적이고, 금형을 새로 제작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결국에는 상황에 따라 NCT 또는 LASER 재단을 적절히 활용하는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
|
|
모든 것이 기계로 진행되는 재단 공정은 철제 가구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재단은 시작일 뿐, 뒤에 이어질 복잡한 가공과 마감 과정이 많은데도 말이죠.
2D의 소재를 3D로 만드는 다른 제조업의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패턴'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도면처럼, 정확한 사이즈로 원단을 자르고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죠. 게다가 옷은 S, M, L처럼 사이즈라는 개념이 있기에, 정교한 패턴을 바탕으로 비율을 조정하며 옷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
|
|
대학생 시절, 저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며 모델리스트 수업을 찾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심하게 길이와 각도를 측정하고 짜임새 있게 계산하며 패턴을 그리는 작업이 제 적성에 맞았는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겁게 강의를 듣고 실습을 진행했죠.
하지만, 크게 낭패를 겪은 적도 있습니다. 유연하고 탄성이 있는 직물의 특성 때문에 패턴에 따라 재단을 하다가도 오차가 생길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죠. 재단에서 발생한 오차는 이후 모든 과정에 악영향을 끼쳤고, 결국 사이즈에 오차가 생겨 입지 못하는 옷이 되었습니다.
철제 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1mm가 길어도 문제, 짧아도 문제인 것이죠. 그렇기에 레어로우는 자동화 시스템 구축과 정밀 기계에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
|
차곡차곡 쌓인 레어로우의 지난 뉴스레터들이 궁금하다면? |
|
|
철을 잘 자르고 나면, 그 조각들을 접고 구부리고 붙이며 3차원의 형태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색을 입히기 전에 디테일한 모양까지 완성하는, 마치 조각상을 허공에서 만드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 할 일이 많기도 하고, 그런 만큼 상징적인 과정이다 보니 벌써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무더위가 장마를 만나 한 풀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습하고 더운 요즘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안전하게 7월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
|
레어로우 rareraw
장안동 쇼룸 |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83길 31 스틸얼라이브 1층
성수 레어로우 하우스 |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20
|
|
|
|
|